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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밀양문인협회, 지역문화 탐방

태풍이 살짝 지나간 탓인지 주위 환경이 맑고 청명한 날, 한국문인협회 밀양지부(지부장 박태현)에서는 연례행사로 727일 오전 9시 밀양강 오리배 선착장에 모여서 지역문화 탐방에 나섰다. 밀양 관내에도 알아보면 좋은 문화재가 너무나 많지만 찾지 못하고 알아보지 않아서 모르고 지낸다. 작년에 무안면에 이어 올해는 청도면으로 향한다. 첫 번째 찾아간 곳은 청도면 고법리 박익 벽화 묘다. 지정번호 사적 제459호로 200525일 지정되었다. 분묘유적 크기 면적 2.639벽화 묘 가는 길은 수풀을 깨끗이 베어 놓았고 길도 넓어 찾아가기 편하게 해 놓았다.

밀성 박씨 묘역의 능선 경사면에 있는 고려 말 문신인 송은(松隱) 박익(朴翊) 벽화 묘이고, 석인상, 갑석, 호석을 갖춘 방형분이다. 내부 석실의 벽에 당시의 생활 풍속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고 한다. 바깥 봉분 돌에는 이끼와 돌꽃이 화려하게 피어있었다. 이 무덤은 남쪽으로 수도(隊道)를 갖춘 방형 묘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축조 방식으로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벽화는 화강암 판석 위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먼저 검은색 선으로 내용을 그린 뒤 마르기 전에 채색하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고 하니 더욱더 놀랍고 그 시대에 그런 기법으로 무덤을 완성했다고 들으니 이 가문의 번성함을 짐작하겠다. 무덤 내부에서 무덤 주인공의 약력을 기록한 지석(誌石)이 출토되었다 한다. 고려 말기의 충신, 공명 왕 때 상장으로 강회중과 함께 남정북벌에 공이 컸고 고려 망국 후 은거, 저술에 전념했다. 태조 이성계가 공조판서로 임명했으나 불응하여 고려 유신의 도리를 다했다. 조선 초기 생활 풍습의 연구와 고고학적, 회화사적 가치와 박익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유적이라니 더위를 날리며 올라온 보람이 있었고 밀성 박씨 가문을 떠나 밀양 사람으로 뿌듯함은 왜일까?

두 번째 찾은 곳은 두곡리 남계서원이다, 경남 문화재 자료 제229호 쌍수당(雙手堂), 경내에 있는 청도 김씨 시조 김지대(金之岱)의 충효쌍수(忠孝雙修)의 위업을 숭상하기 위해 창건한 곳이다. 처음 사당의 이름을 충효사(忠孝祠)라 하였고 강당을 쌍수당((雙手堂) 이라 하였는데 이는 서기 1217년 거란이 우리나라를 침입해 왔을 때 김지대가 스물여덟인 나이에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從軍)하면서 방패에 지은 시(), 일명 순두시(楯頭詩)국환신지환(國患臣之患), 나라의 근심은 신하의 근심이고/ 친우자소우( 親憂子所憂), 부모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이라/ 대친여보국( 代親如報國), 어버이 대신 나라 은혜 갚는다면 / 충효가쌍수(忠孝可雙修), 충과 효를 모두 닦는 것이라고 한데 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고려 중기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는 거란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이듬해 과거에 일등으로 급제하여 전주사록, 보문각교감, 진주목사, 전라도 안찰사, 경상도 안찰사, 첨서 주밀원사, 북계 지병마사를 지내고 오산군(鰲山君)에 봉군되었다.

특히 전라도 안찰사 시절에 당시 세력가인 최충헌의 손인, 중만전의 횡포를 단죄한 일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 그의 벼슬은 정당문학, 이부상서, 금자광록대부, 수태부중서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 그 때 향연은 77세라 전한다. 오래된 이야기 같은 역사는 청도 고을의 자랑스러운 충, 효의 고장 인물을 기록한 블로그에서 읽었다. 청도읍 용연(龍淵)이라고 부르는 곳, 청도군 한재에서 태어나 살았으며 어릴 때부터 문장에 능하고 활쏘기 등 무예가 뛰어나서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각했던 인물. 그의 묘는 청도읍 대성리에 있다. 남편을 따라 김지대 청도 김씨 시조 묘에 가 본 기억이 있어 오늘 문화재 방문은 더 즐거움이 있다. 남계서원은 대원군 때 헐려서 폐허가 되었으나 1907순종에 낡은 강당을 철거하고 새로 지었다. 1954년에 다시 강당을 철거하고 지금의 쌍수당을 지었다. 1986년부터 서원 복원을 추진하여 1989년 묘우(廟宇)를 완공하고 1990년에 김지대의 오 세손인 오산군 한귀(鰲山君 漢貴)와 칠 세손인 호강공 점(胡剛公 漸)을 함께 배향(配享)하였다. 건물은 묘우(廟宇), 신문(神門), 강당인 쌍수당(雙修堂), 동재(東齋)인 원청재(元淸齋)와 서재인 강의재(岡毅齋), 정문인 숭덕문(崇德門)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리 하는 분이 마중을 나와서 성의껏 설명 해 주었다. 여름철 우거진 풀들을 깨끗이 정리를 해 놓고 방문하는 손님을 맞는 모습도 좋아 보였고 활짝 웃는 배롱나무꽃도 우리에게 붉고 붉은 말을 걸어왔다. ‘이제 우리나라 서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시대라고. 다음 기회가 되면 아들을 데리고 한 번 와 보고 싶은 곳이다.

세 번째 간 곳, 소태리 오층석탑이다. 날씨가 다니기 좋았는데 그곳에 내리자마자 검은색 나방이 웽웽거리며 얼굴을 공격한다. 부채로 쫓아내기 바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 떼 공격에 간신히 기념사진을 찍고 왔다. 훌륭한 화강암으로 제작된 오층탑은 보물 제312호다. 고려 시대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가장 아랫부분은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나머지 옥신과 지붕돌의 모서리 부분은 풍탁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남아있다. 1919년 상륜부에서 먹으로 쓴 당탑조성비가 발견, ‘건통구년삼월구일기(乾統久年三月九日記)’라는 연호가 있어 이 탑이 세워진 연대<1190>를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천축사(대한불교조계종 9교구 동화사 말사)가 있으나 이 석탑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한다. 세 곳을 다니며 한나절 흘린 땀이 얼마나 보람 있는 땀이었는지 점심밥 맛이 꿀맛이다. 함께 모여 문화재 탐방하는 기회가 있어 감사한 하루였다.

김점복/주부기자

2019-08-23 오후 5:11:40, HIT : 353, VOTE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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