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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그 향기는 좋았으나

[2021-04-09 오후 4:26:04]
 
 
 

30년쯤 전의 커피는 알갱이로 되어 있는 인스턴트커피와 프림, 설탕을 섞어서 마시던 차였다. 사람들 마다 기호는 당연히 달라서 커피와 설탕, 프림의 양은 사람들 마다 당연히 달랐고, 그에 따라 커피 맛도 달랐음이 틀림없다.

그러던 것이 길쭉한 비닐봉지에 일정한 양의 커피와 프림과 설탕이 들어있는 믹스커피로 슬금슬금 바뀌더니, 그전의 커피 병, 프림 병 등은 자취를 감춰버리고, 커피 맛은 누가 끓여도 똑 같은 획일화된 맛이 되어 버렸다.

맛의 획일화가 꼭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슨 음식이든 맛이 못해지는 쪽으로 진행되진 않을 테고, 좋아지는 방향으로 획일화가 진행될 것은 자명한 일이니까.

믹스커피의 경우, 한때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던 외국인들이 자기네 나라로 돌아갈 때 부모님께 드릴 선물로 가져갔을 정도로 인기 있었고, 인기가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배합이 훌륭하고, 그 만큼 맛이 훌륭했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믹스커피의 인기도 별다방, 할리다방, 천사다방 등의 대기업 카페의 출연과 수많은 바리스타 양산으로 생긴 크고 작은 커피 전문점들에 의해 꺾여 버리고, 지금은 아메리카노와 무슨 무슨 라떼의 세상으로 바뀌어 버린 것 같다.

10여 년 전쯤,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집주인이 한창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을 때라 자기 집에 발을 들인 사람은 반드시 커피 맛을 봐야만 했다.

이건 무슨 커피콩이고, 이건 많이 볶은 콩이고, 이건 생산지가 어디고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손으로 돌리는 기계로 커피콩을 갈고, 거름종이를 깔고, 끓인 물을 이런 식으로 부어서 커피를 내리고, 커피 잔은 데운 걸 사용해야 하고 하면서 만들어준 커피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그때까지 믹스커피만 마시던 터라, 사실 엄청 쓰고 맛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으니까?)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굳이 바리스타 자격 같은 건 따지 않더라도 집에서 우아하고 고상스럽게(?)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어 마시겠다는 생각.

언젠가 이 얘기를 같이 근무하던 동료에게 했더니, 동료의 아버지가 매일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셨는데, 그 귀찮음이 하늘을 찌르고, 맛이 그때그때 달라서 딸랑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캡슐커피로 바꿨단다.

합리적이고 슬기롭게 판단한다고 우기지만, 실은 포기가 지나치게 빠르고, 또 귀찮은 거 엄청 싫어하는지라 핸드드립은 포기, 지금까지 초보스럽게 캡슐커피를 마시고 있다.

생산지 별로 제품이 나오고, 전문 바리스타가 블랜딩한 제품 등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고, 나름 커피 농도 조절도 가능하고, 라떼 그런 것도 만들 수 있어서 비교적 저렴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데, 문제는 아직도 커피 맛이라는 걸 모르겠다는데 있다.

딱 마시면 이건 신맛이 강하니까 어디 산, 이건 쓴맛이 강하니까 어디 산, 뭐 그런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커피가 쪼르륵 흘러내릴 때 그 향기는 좋은데 당최 맛을 모르니

그렇다는 얘기다.

하긴 음식도 맛있다와 맛 없다로 구분하는 수준이니.

 

김종열/농협 밀양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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