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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만남(3)

[2020-01-20 오후 4:54:44]
 
 
 

3장 우국(憂國)의 밤

이상한 만남(3)

 

그러나 중산도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피력한다.

시생의 집이 있는 동산리는 이곳보다 들판이 넓은 데다 교통편도 훨씬 편리하지요! 우리 문중의 도구늪들 앞에도 벼 수백 석을 실은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석제진(石提津)이라고도 하는 돌티미 나루가 있고, 또 삼랑진역이 지척이라 미곡을 매집(買集)하여 철도편으로 바로 신의주나 만주 쪽으로 운반할 수가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기차보다는 운임이 훨씬 싼 배편으로 남해 바닷길로 나가 신의주까지 갈 수도 있으니 여기보다는 그쪽이 어느 모로 보나 교통이 훨씬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중산은 진실로 사내의 신분이 무엇인지 스스로 가늠해 보면서 그의 진심을 파악하기 위하여 차근차근 성의 있게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로 사내의 신분이 단순한 미곡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선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럴수록 자기네 동산리 얘기를 자세하게 하면서 그 반응을 살펴볼 요량인 것이다.

그의 말대로 동산리 앞으로 흘러가는 응천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삼랑리 일대는 조선조 후기에는 경상도 삼조창(三漕倉)의 하나로 후조창 (後漕倉)까지 설치된 곳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밀양, 양산, 현풍, 창녕, 영산, 울산, 동래 등 인근 7개 군현의 조세를 징수 보관하고 수로를 이용하여 운반하던 한 도회로서 차소(差所), 선청(船廳), 통창(統倉), 고마창(雇馬倉), 객줏집, 여인숙 등과 같은 건물들이 즐비했으며, 거기에 따른 선주(船主), 조군(漕軍), 색리(色吏), 고자(庫子), 관노(官奴)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인근 고을에서 거두어들인 수많은 조세곡들이 배에 실려 그곳에 모여들곤 하였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그 조세곡들은 통창에 보관해 두었다가 큰 배에 옮겨 싣고는 낙동강으로 내려가 남해를 거쳐 통영까지 가서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군량미로 넘겨주거나, 서해로 북상하는 뱃길을 이용하여 한양 도성의 마포나루와 한강진까지 운반하곤 하였는데, 지금도 그 시발지로서 예전처럼 번성하지는 않으나 수로의 요충지 역할만은 여전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하는 중산의 성의 때문인지, 사내가 비로소 속에 있던 말을 입에 담았다.

사실은 나도 구포와 동래를 거쳐서 부산포를 자주 가는 편이라, 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하여 아주 백면서생은 아니지요! 예배당이 있는 마산리 앞의 마산포 나루에서 유숙을 한 바도 있었고, 동래를 거쳐서 부산포로 가는 길에 구포까지 배를 타고 가 본 적도 더러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예배당이 있는 마산리 앞의 마산포 나루에서 유숙을 한 적이 있다는 것과 그 지역에 대해서 알 만큼은 알고 있다고 뒤늦게 실토하는 사내의 말에 중산은 갑자기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심사였다. 아까 게줄 당기기 놀이마당에서 뭇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떠벌리던 그의 막말이 이쪽에서 들으라고 의도적으로 행한 짓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뒤통수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그러시다면 우리 집안에 대해서도 알 만큼은 알고 계시다는 말씀이시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중산의 목소리에 바람이 인다.

글쎄요! 지난 임오년에 무위영 소속의 구훈련도감 군병들이 선혜청 도봉소를 습격하여 군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던 척족정권의 실세였던 여흥 민씨 일파가 나라가 망한 지금도 향리 곳곳에서 대단한 가세를 유지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듣고 있었지요!”

한가로운 풍월처럼 읊조리고는 있어도 임오군란에 대하여 각별한 사연이 있는지 사내의 말 속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러시다면 혹시 선생께서는 우리 여흥 민가들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중산의 의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수처럼 차갑게 날을 세운다. 아무래도 사내의 가슴 속에 무언가 자기에게 감추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는 것이다.

이씨 왕가이든 민씨 척족 세력이든, 아니면 대대로 국록을 먹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려온 여느 권문 사대부 집안이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위정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뜻이지, 사적으로 진 빚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여흥 민씨들에게 별다른 원한이 있을 까닭이 없지를 않겠습니까? 특히, 왜놈들에게 원한이 맺혀 있다는 이곳 민 선비 집안에 대해서는 말이외다!”

그래도 시생이 느끼기에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마는!”

그러면서 중산은 임오군란 때 관노가 되었던 반란군의 여식을 종으로 하사 받았다는 승당 할아버지의 옛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글쎄올시다! 그렇게 따진다면 세상에 빚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지난 역사 속에서 할 바를 다하지 못한 정권 실세들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외다. 그리고 그것을 통감하고 이제라도 지난날에 진 그 빚을 청산하는데 물심양면으로 힘을 쏟아 준다면 권문 사대부로서의 도리로 그보다 값진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중산은 그제서야 그의 의중을 간파하고 답답하던 가슴 한 쪽이 희미하게 터여 옴을 느끼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손수 술을 따라 한 잔 마시고 나서 정색을 하고 묻는다.

아까 신의주에서 미곡상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 그 얘기요? 그쪽이 어떤 집안인지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야 안심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신의주에서 미곡상을 운영하면서 사실은 대종교(大倧敎)의 사교(司敎) 노릇을 하고 있지요!”

대종교라고요?”

눈썹이 짙은 중산의 미간이 좁게 모아진다.

우리 국조(國祖)이신 단군대황조성신(檀君大皇祖聖神)을 모시는 민족종교 말이외다!”

네에. 그러시다면 장차 시생하고 미곡 거래를 하실 요량은 없으십니까? 앞으로 시생이 직접 처분해야 될 미곡이 해마다 수천 석이 되고, 동산리 우리 집안사람들의 것까지 합치면 일만 석은 좋이 웃돌 양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중산은 사내가 자기네에게 꽤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인연을 여기서 끊고 싶지는 않았다.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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