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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에 부는 바람(3)

[2020-08-11 오후 4:35:19]
 
 
 

3장 우국(憂國)의 밤

 

성내에 부는 바람(3)

 

1915년을 전후하여 나라 안의 우국지사 및 선각자들에 의해 <대한 광복회><조선국권회복단> 등 국권 회복을 위한 비밀결사 단체들이 앞 다투어 결성될 무렵, 이곳 밀양에서도 국외의 무장 독립노선과 흐름을 같이한 비밀결사 <일합사>가 결성되었는데, ‘조국 독립을 위하여 청춘의 일편단심을 합한다.’는 뜻의 <一合社>는 구국 운동을 결심한 황상규, 김대지, 구영필, 윤치형, 안곽, 이영재, 이수택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단체였다.

그런데 그들 중 이미 오래 전에 그 실천을 위하여 광복단에서 활동 하다가 중국으로 망명한 황상규, 김대지 같은 사람도 만주에서 이회영·이시영 선생 6형제들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학교의 설립에 참여한 윤세용·윤세복 선생 형제들과 그 후배인 밀양 손씨 집안의 손일민(孫逸民: 일명 孫一民) 선생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었다.

선생님, 혹시 저기에 모여 있는 기독교 청년회에도 <일합사><연무단>에 소속된 단원들이 물론 섞여 있겠지요?”

그야 망명한 고모부를 찾아 밀양을 떠나간 김원봉 군처럼 항일 의식이 골수에 박힌 이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거나 나라 밖으로 나가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국내에 남아서 같은 일을 도모하는 이도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

,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딴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보게, 태준 군. 내 얘기를 한번 들어 보게!”

그러면서 죽명 선생은 운사의 태도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지, 을강 전홍표 선생한테서 들었던, 상남면 마산리 출신의 최수봉(崔壽鳳)이라는 그의 제자에 관한 얘기를 들려준다.

아마도 최수봉이라는 을강 선생의 제자가 밀양 공립보통학교에 다닐 때의 일본 역사 수업 시간이었나 보네. 최 군을 가르치던 왜놈 선생이, 일왕의 시조인 아마데라스 오오미까미(天照大神)에게는 스사오노오 미코토(素鳴尊)라고 하는 남자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조선의 단군 임금이 그 스사오노오 미코토의 동생이라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던 모양이야. 그러자 최수봉 군이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반론을 제기 했다지 뭔가! 단군은 지금으로부터 42백 년 전의 우리 조상이고, 일본의 스사오노오 미코토는 25백 년밖에 안 되는 후대의 사람인데, 어떻게 나이가 많은 단군이 나이가 적은 스사오노오 미코토의 아우가 될 수 있느냐, 하고 말이네!”

어린 최수봉이 이렇게 반문하는 바람에 왜놈 선생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나 그는 약이 오를 대로 올랐던지 이치에 닿지도 않는 그 두 인물간의 관계를 학교의 정식 시험 문제에 그대로 버젓이 출제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수봉 군이 시험지에다 그 답을 어떻게 썼는 줄 아는가? ‘스사오노오 미코토는 단군의 중현종(重玄宗)’이라고 써놓고는 밖으로 휭 하니 나와 버렸다는 게야!”

중현종이라고 하면, ‘고손자의 고손자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야 물론이지!”

거 아주 명답 중의 명답이로군요! 그런데 그 후에 최수봉이라는 학생은 어찌 되었다고 했습니까?”

화가 난 왜놈 선생이 교장실로 끌고 가서 일본 황실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죽도록 때려서 나이 어린 불령선인(不逞鮮人) 분자라는 딱지까지 붙어 가지고 당장 퇴학 처분을 내렸다는 게야. 그 바람에 최 군은 한동안 방황하다가 을강 전홍표 선생이 설립한 이곳 해천껄의 동화학교(同和學校)에 편입학하여 중학교 과정을 이어 갔다지 뭔가.”

얘기를 끝낸 죽명 선생은 다시 한 번 운사에게 정색을 하며 이르는 것이다.

이보게, 운사! 이 최수봉이라는 청년도 방금 얘기한 김원봉 군처럼 <일합사> 단원으로 애국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난 지 오래라네. 그러니 자네는 그런 비밀결사 단체의 단원을 넘보기보다는 불쌍하고 힘없는 우리 조선 민중들의 건강을 돌보는 게 애국운동에 동참하는 최상의 방법이 되지 않겠나? 조선 독립투쟁에 뛰어드는 사람은 많으나 서양 의술을 익힌 재원은 우리 밀양에서도 아직은 찾아보기가 힘든 귀한 존재이니 말일세. 그러니 딴 생각하지 말고 내 말을 명심하게나!”

죽명 선생은 장조카 중산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자기의 든든한 의료 사업의 동지이기도 한 운사에게 각별하게 주의를 준 뒤에 그의 어깨를 몇 번이나 두드려 주고는 언덕 아래의 목사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죽명 선생이 목사관의 회의실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던 19089월에 사재를 털어 사설 동화학교를 설립하여 밀양 청년들의 애국 독립정신 함양에 힘써 온 장본인인 을강 전홍표 선생과 밀양 역전 가곡리에서 정미소를 겸한 곡물 무역상에다 비단 가게와 운수업까지 겸업하면서 일약 거부가 된 한춘옥(韓春玉) 사장이 먼저 와 있었다.

어서 오시요, 죽명 선생! 벌써 예배가 끝났나 보구려?”

죽명 선생이 들어서자 언제나 그랬듯이, 조선 바지저고리에 검정색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전홍표 선생이 먼저 인사를 한다.

, 조금 전에 끝났지요. 그러니 우리 고삼종 목사님께서도 이제 곧 내려오실 겝니다!”

오늘이 진료를 쉬시는 공일이라, 예배까지 보셨으니 선생께서는 벌써 하루 일과를 마치신 셈이로군요?”

을강 선생은 죽명 선생을 만날 때마다 늘 이렇게 친밀감을 드러내곤 한다.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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