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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황(女皇)의 행차-5

[2021-08-17 오전 10:03:10]
 
 
 

4장 운막향(雲幕鄕)의 후예들

여황(女皇)의 행차-5

 

사실, 김 서방은 죽창을 들고 체력 단련을 하고 있는 표충사 중들의 얘기보다도 마산리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머슴들이 그런 말을 겁도 없이 함부로 흘리고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이 보게, 김 서방!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표충사의 젊은 승려들이 죽창이나 죽봉을 가지고 체력단련을 하면서 호신술을 익히고 있다는 얘기는 나도 예전부터 들어서 이미 잘 알고 있다네. 하지만 그건 호국 사찰인 표충사의 오래 된 전통이라는 게야.”

표충사는 임란 때의 의승대장이었던 사명대사를 비롯한 서산대사와 기허대사 등 세 분 호국승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경내의 표충서원에서 해마다 춘추로 밀양 유림과 사찰 측이 합동하여 그분들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향사를 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왜놈들이 그런 사실들을 알면 가만히 있겠습니껴?”

걱정할 것 없네! 표충사는 사명대사의 구국정신을 기리는 호국사찰일세. 그런 무술 수련은 예전부터 종교적인 수행 차원에서 전통적으로 시행해 왔다고 하니 동티가 나려면 진작부터 났을 걸세. 안 그런가?”

정말로 그럴깝쇼?”

그건 군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수행 차원의 문제라, 왜놈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다만, 그놈들도 호국사찰인 표충사의 내력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수행생활이라고는 하여도 무예 수련에 대해서 눈에 불을 켜고 살피고는 있을 것일세!”

서방님의 말씀을 듣고 보이 소인 놈이 그런 것도 모르고 지레 겁을 묵고 설쳤던 거 같습니다요!”

김 서방, 자네가 공연한 걱정을 한 건 아닐세! 우리 문중의 식솔들이 함부로 그런 말들을 하고 다니는 건 좋지 않으니까, 자네가 나서 가지고 엄중하게 입단속만은 단단히 좀 해 주게나!”

, 그라모 그렇게 분부를 받들겠습니더!”

발길을 돌린 김 서방이 저만큼 바쁘게 걸어가자, 어린 딸을 돌봐야 하는 그의 홀아비 신세를 딱하게 여긴 중산이 뒤에서 의미 있는 말을 한마디 던진다.

이보게, 김 서방! 주야로 그렇게 우리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앞으로는 자네 걱정도 좀 하게나!”

걸음을 멈춘 김 서방이 중산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대로 행랑 측간 쪽으로 멀어져 간다.

그러나 중산은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잊은 채 여전히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표충사를 향해 떠나간 용화 할머니의 가마 행렬이 그 많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오늘 밤을 어디서 유하기로 하신 것일까.

중도에서 날이 저물면 그곳 어디메 객줏집이나 어느 반가에서 하룻밤 유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어느 의병운동가의 은둔처에 들러 현하의 비책을 숙의하기로 일정을 짜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온갖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갑자기 머리를 후려치는 또 다른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심사였다.

운곡 선생의 서찰을 받은 후에 처음으로 드러낸 움직임이 표충사 절간으로의 불공 행차라면 이것 역시 병가에서 말하는 소위 연막전술의 일환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 서방이 전해 준 말처럼, 표충사의 젊은 중들이 죽창을 들고 조석으로 체련단련에 임하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이 마당에 용화 할머니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요란하게 표충사 절까지 불공하러 떠나는 걸 보면, 그 이면에는 보다 깊고 은밀한 의도가 숨어 있으리라는 게 중산의 짐작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여태까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더구나 그놈들이 무너뜨린 대한제국의 황실 척족 세력으로서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역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우리 집안의 일거수일투족에 온갖 첩보망을 펼쳐놓고 감시에 감시를 거듭하고 있을 그놈들의 존재를 용화 할머니께서 간과하고 계실 리가 없지 않은가?

중산은 모처럼 인동덩쿨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숙제의 매듭 하나가 오늘 드디어 풀렸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혼잣말로 다짐하는 것이다.

할머님과 아버님께서 극비리에 도모하고 계시는 일을 전혀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하는 것도 자손으로서 취할 올바른 도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윗분들께서 처하신 사정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으면서 그분들의 지엄한 단속에 따라 언행을 삼가는 것이 더 크고 바른 효도의 길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이 그와 같이 뻗어 나가자 시시각각으로 짙어 오는 아침 햇살 속에서 중산의 두 눈이 모처럼 뜨겁게 빛을 발한다.

자기가 수행할 중요한 일거리 하나를 생각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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