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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라 미술관 素描

[2019-04-02 오전 9:59:40]
 
 
 

한 며칠 시코쿠 추오시를 비롯해 마쯔야마를 거쳐 오카야마 구라시키 미관지구, 그리고 고베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우리 학숙과 자매결연을 맺은 ‘시코쿠 정경숙’ 방문이 주목적이었지만, 이웃 나라 일본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준비된 학습 여행이기도 했다. 가만하고도 고요하며 절제된 분위기와 제자리에 깨끗이 정돈된 질서를 배우고, 우리와 다른 문화적 차이에서 어떤 새로운 시각을 발견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 효과를 포함하는 여행이었다. 그야말로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면서, 정서적으로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멀고도 먼 나라에서, 다시금 우리 스스로를 조망해 보는 것은 일본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이기도 하다.


해거름 녘 입장 마감 시간 임박해서 둘러본 오하라 미술관은 내게, 마치 황금 광산(鑛山)을 품은 것 같은 겸손한 도서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끌로드 모네를 만났고 그의 그림 속으로 종일토록 들어간다면, 에메랄드로 이루어진 산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탐색했던 물빛 수련(睡蓮 Water Lily). 자연에 대한 우주적 시선으로 빛을 채색하고자 했던 의지를 따라가 빛의 속도를 느껴보기에는 한 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밖에도 거장의 작품들이 어깨 넓이로 한 공간에 늘어서 있는 모습도 놀라웠지만, 그토록 고농도의 밀도 가운데서도 고요를 유지할 수 있는 제 각각의 선명도는, 일본 고유의 분위기만이 자아내는 기류일지도 몰랐다.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서늘한 아우라 또한 예술의 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예술이란 바로 그런 의지들의 융합이며 다각도의 프리즘이 아닐까.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의 역할. 나에게 예술이란 그런 의미로 일생을 통해 오르고 올라도 더 오르기 어려운 높고도 높은 봉우리였다. 지금까지도 온몸의 혈류를 따라 흐르는 선망의 예술혼. 그것이 예술의 언저리에서 늘 맴돌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오하라 미술관은 1930년에 개관한 일본 최초의 사설 미술관이라는데, 고갱, 모네, 피카소, 샤갈, 르느와르, 모딜리아니, 건물 입구에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까지 무게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어쩌면 이 무게 중심의 균형은, 미술관이 개관할 수 있도록 작품 구입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오하라 마구 사부로의 도시와 시민에 대한 자세와 생활 태도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서둘러 미술관을 빠져나오면서, 날카로운 봄바람에도 옷깃이 날리지 않는 칼레의 시민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절망과 고뇌 속에서 절벽에 내몰리는 고통을 녹여낸 예술 작품들은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세상 곳곳에서 우뚝 우뚝 자리하고 있나보다.


깨알같이 가슴에 새겨 넣은 오하라미술관과의 짧은 해후는, 보잘 것 없는 내 삶의 속살들과 가감 없이 엉켜 추억의 한 페이지로 오래 각인될 것 같다.

정희숙/(사)기회의학숙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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