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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병(夫源病) 유감

[2020-09-14 오후 1:45:36]
 
 
 

코로나 창궐로 가정 내 생활이 길어지면서 부부간 불화가 잦다는 말을 듣고 부원병(夫源病)이 떠오른다. 이 병은 은퇴한 남편이 간섭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부인이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질환이다. 한국판 화병(火病)이다. 증상은 두통, 현기증, 불면증, 이명현상 등을 수반한다고 한다.

처음으로 병명을 제기한 일본의 이시쿠라 후미노부 교수에 의하면 참을성이 많은 현모양처일수록 부원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또한 내가 다 벌어 먹이고 있다는 가부장적인 남편과 가사를 잘 돕고 있다는 자칭 착한 남자라고 자만하는 남편이 바이러스 제공자라고 한다.

한편으로 남편들도 항변이 있을 것 같다. 이 땅의 남자들은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온 몸을 던져 생존에 매달렸다. 자기계발보다도 항상 일이 우선이었다. 그러하니 노후의 삶을 미리 대비할 만한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우직하게 일만 해온 남편들은 일선에서 물러나자마자 부원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고 만 셈이다. 이에 남편들의 각성으로 취사기(炊事期)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퇴직 후의 남편이 가사노동자로 취업한다는 의미이다. 설거지나 분리수거, 집안 청소 정도는 분담할 정도로 부엌 앞치마에 익숙해지라고 한다.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각기 항변이 옳아 보인다. 남편은 평생 일만 하다가 이제 좀 쉬려고 하니, 찬밥 신세라는 투정이다. 반면에 아내는 평생을 남편과 애들을 뒷바라지 하고 이제 내 삶을 조금 찾으려고 하니, 늙은 남편이 돌봐달라고 보챈다고 한다. 이런 시각이라면 가사문제 해결만으로 부부의 행복공동체를 복원하기 어렵다.

시중에는 은퇴 후의 남자들에게 주는 지침이 여럿 나돌고 있다. 대체로 가사에 참여는 물론이고 기존의 생활방식을 바꾸라는 주문이다. 자립심을 기르고 가급적 의견충돌을 피하고, 아내에게 이유를 묻지 말고 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주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주문이지만, 남편으로서는 실행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여태껏 해보지 않은 일을 나이 들어서 하기도 어렵거니와, 쫓기듯 내몰리는 삶의 방식에 흥이 날 리가 없다. 그래서 임서기(林捿期)라는 말에 자꾸 눈길이 간다.

임서기는 인도의 힌두교 교리로서 남자가 50세가 넘으면 가정을 떠나 숲 속에서 혼자 살라는 지침이다. 자기를 되돌아보는 종교적 의미로 출발했겠지만, 생식과 노동의 임무를 마친 남자는 가정에 짐이 된다는 사회적 의미도 있을 것 같다.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가 오랫동안 상당한 시청률을 유지하는 것은 현대판 임서기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른다.

생애주기로 보아, 초년 30년간에 일뿐만 아니라 노후의 삶도 함께 준비해야 하겠다. 젊어서부터 준비가 되지 않으면 고립적인 무위(無爲)의 노인이 될 뿐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의 첫 걸음은 가족으로부터이다. 가족은 부부관계에서 시작됨은 물론이다. 남녀의 역할도 퇴직 후에나 바로 잡으려하지 말고 어려서부터 습관화되어야 하겠다.

며칠 전에는 이제 갓 성인의 반열에 오른 늦둥이 아들이 엄마의 손길을 마다하고 레시피를 흥얼거리며 비빔국수를 식탁에 올렸다. 부원병(夫源病)의 폐해를 미리 알았음일까. 여권(女權)의 신장속도를 가늠해보면, 이 아이들이 맞이할 노년에는 어쩌면 부원병(婦源病, 아내가 남편에게 주는 병)이 유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창권/논설위원

 
 
 
군자 시사성과 재미가 잘 조화되어 바로 와 닿았습니다.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9-18 05:00
늘 푸른동산 서로가 생각해볼만한 멋진 칼럼 입니다.


2020-09-15 10:17
유비 재미지게 읽었습니다 건강함에 감사합니다 2020-09-15 09:32
하히 재밌는 글이네요 ㅎㅎ 깨닫고 갑니다~ 2020-09-1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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