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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온 손님(3)

[2020-11-12 오후 1:11:27]
 
 
 

3장 우국(憂國)의 밤

 

북쪽에서 온 손님(3)

 

을강 선생께서 가르치신 옛 제자들 중에는 의기 넘치는 백민 선생의 처조카도 있었다면서요?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자기에게 자식이나 다름없이 돌봐 온 김원봉이라는 처조카가 있는데, 보통학교에 다닐 때 왜놈들의 국경일인 천장절(天長節)일장기 훼손 사건을 일으킨 바 있는 소년 항일투사로서 장차 독립운동사에 이름을 크게 남길 걸출한 재목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처조카의 사설학교 동문으로서 우리 단군왕검 대황조를 일왕가의 후손이라고 우리 역사를 터무니없이 왜곡하여 엉터리로 가르치는 왜놈 선생한테 조목조목 따지며 당차게 대들었다가 죽도록 얻어맞고 강제 퇴학 처분을 받았다는 소년 항일투사 최경학 군의 피눈물 나는 얘기에다, 이곳 밀양에서 백민 선생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이 학창 시절에 결성한 <일합사><연무단>의 정신을 계승한 많은 후배들이 지금도 대한독립 운동을 삶의 지표로 삼고 을강 선생님 밑에서 믿음직한 꿈나무로 커 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자신을 소개한 가운데 대종교 총본사의 윤세복 선생과 광복단 사건으로 중국으로 망명한 백민 선생의 근황이며, 서일 선생이 창단했다는 <중광단>의 얘기에 이어 김원봉과 최경학의 얘기까지 흘러나오자, 회의실 여기저기에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하고 있던 모든 청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 둘씩 그들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여 어느 새 그들 주위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을강 선생은 그와 같은 휘하 청년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의식하고 그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고 있을 중국으로 간 김원봉 군의 근황 얘기부터 먼저 물어본다.

그러시다면 선생께서는 우리 김원봉 군의 소식도 백민 선생한테 들어서 잘 알고 계시겠군요?”

, 알다마다요! 백민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처조카인 김원봉 군도 당신처럼 조국 광복에 헌신하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군사 강국인 독일유학 꿈을 꾸고 있었는데, 지난 191610월부터 천진에 있는 덕화학당(德華學堂)이라는 덕국계(德國系: 독일계) 학교에 다니도록 선생께서 직접 주선해 주었다고요. 그런데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바람에 지난해에 극비리에 일시 귀국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아니, 김원봉 군이 작년에 귀국하였다고요?”

중국에 있어야 할 김원봉이 귀국했다는 바람에 을강 선생은 적잖이 놀란다.

.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중국과 덕국이 적대 관계가 되면서 그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구니인 이모할머니가 있는 서울에서 모교인 중앙학교의 교우들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꿈을 꾸며 앞날을 모색하고 있는데, 곧 중국으로 불러 들여 독일어학과가 개설돼 있는 남경의 금릉대학(金陵大學)에 편입학을 시킬 계획인 모양이었습니다.”

, 일이 그렇게 된 게로군요! 그 친구는 중국으로 가기 전에 서울 중앙학교에 다니면서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석농(?) 유근(柳瑾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 선생과 같은 훌륭한 민족주의자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윤치영(尹致暎), 김두봉(金枓奉) 등과 교유하게 되면서 그분들의 영향으로 독립군의 지도자가 되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내에 와 있는 지금도 아마 여전히 군사 강국인 덕국 유학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겝니다.”

, 저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백민 선생께서는 독립운동가의 꿈을 꾸고 있는 고향의 다른 후배들에게도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고 계시는 눈치였습니다. 저더러 밀양에 가는 기회가 생기면 을강 선생을 꼭 한번 만나 뵙기를 부탁하시면서 <일합사><연무단> 시절의 후배들 얘기를 자세하게 해 주시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오늘밤 최응삼 선생께서 전해 주신 단애 선생과 백민 선생의 얘기를 비롯하여, 김원봉 군의 근황 얘기는 앞으로 <밀양청년독립단>에서 활동하게 될 여기 있는 모든 우리 청년 동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고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전하는 소식이 여기 있는 많은 청년 동지들에게 그 정도로 큰 도움이 된다면야 저로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그런데 을강 선생님께서는 원래 유림의 신분으로 의병운동을 하셨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최응삼 사교는 유림 출신인 을강 선생이 의병운동을 그만두고 대종교로 입문하게 된 사연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 그것 말씀입니까? 사실은 시생이 향교와 사마소(司馬所)를 드나들며 유생 노릇으로 소일하다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는 것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궁내부 주사 출신인 감암(紺巖) 박상일(朴尙鎰) 선생이라는 분과 공모하여 의병진을 구성하여 거병을 준비한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태산같이 믿었던 우리 유림들은 나라를 구하기에 앞서 저마다 복벽주의다, 위정척사다, 외세의 배척이다 하면서 이념과 명분에 사로잡힌 나머지 파벌 싸움에만 몰두하며 허송세월 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마침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국내와 만주에서 독립운동의 선봉이 되고 있는 대종교 쪽의 소문을 접하고 감화된 바가 적지 않아서 망설일 것도 없이 대종교에 입문하게 된 것이지요!”

일찍이 국권회복을 꿈꾸면서 사설 동화학교를 설립하여 밀양의 청년들에게 애국 독립사상 전파에 혼신의 힘을 다해 오다가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을 대황조로 모시는 대종교가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는 것을 보고 뒤늦게 대종교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을강 전홍표 선생.

그는 얘기가 나온 김에 최응삼 사교와 나란히 앉은 자세로 두 눈을 감고 하늘에 계신 국조 단군왕검을 우러러 잠시 기도를 올린다.

배달겨레의 국조이신 한배검님이시어! 나라 잃은 우리 백의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여기 모인 우리 동지들이 불굴의 독립투사가 되어 하루 속히 국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정대재/소설가)

정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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