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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특별한 휴가

[2021-07-27 오후 3:39:03]
 
 
 

겨울의 새벽은 쉬이 오지 않았다. 전깃불이 없는 시골 마을. 아직은 어둠에 싸인 방에서 형과 어머니의 대화가 오갔다. 어머니는 형이 출발할 때 입을 따뜻한 겉옷과 양말 등을 챙기면서 여러 가지 부탁을 하셨다.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걱정과 한숨이 깊게 배여 있어 젖은 솜이불 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형은, 잘 알겠으니 걱정 하지 말라는 대답만 몇 번 했다.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 덮고 자는 척 하고 있었지만 두 분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그날 새벽에 형은 군에 입대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196612월 어느 날의 새벽이었다. 그때 나는 국민(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형은 떠나기 직전까지 며칠 후에 있을 나의 중학교 입학시험을 걱정해 주셨다. 그래서 그날을 잘 기억하고 있다.

천지개벽 할 만큼 세상이 변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들도 법의 심판을 받는 세상이다. 그러니 보잘 것 없는 힘을 믿고 상식과 기본을 벗어난 잘못을 덮으려한들 얼마나 가겠는가? 그래도 자식사랑에는 예외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자식사랑의 표현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자신에게 다가온 더없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병역과 관련된 사항(면제부터 갖가지 특혜)이다. 부모로부터 잘못된 사랑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다음에 부모가 되면 그 잘못된 사랑을 대물림하기 일쑤다. 남달리 특별한 권력이나 부()를 갖지 못한 평범한 인생들이야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해당사항 없다.

선거가 있거나 힘 있는 자리의 주인을 찾을 때면 본인이나 가족 등과 관련해 도덕성 검증같은 것을 하는데 그것이 ‘TV토론회또는 인사청문회인가 뭐 그런 것이다. 크고 작은 비리의 문제들이 불거지는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변명으로 둘러대거나 당연한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해명한다. 몇몇 인사들은 오히려 화를 내면서 상대를 제압하려고도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보통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의 틀을 갖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날 새벽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떠난 형은 여섯 달이 지난 유월의 무더운 어느 날 저녁에 어머니 손을 잡고 나타났다. 그때는 입대 후 일 년이 지나야 첫 휴가를 보내주는데 여섯 달 만에 집에 왔으니 그건 특혜임이 틀림없다. “무명 치마저고리에 코고무신을 신고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채 집을 나선 어머니, 당신은 무슨 재주로 군 복무중인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까?” 그 먼 강원도 홍천에서 밀양 초동면까지. 전화도 없고 길도 제대로 없던 그때.

이웃 마을에 5일장이 서는 날 어머니가 없어졌다. 아침을 맞은 우리 식구는 어머니가 어디 가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분명 어제 밤 잠들기 전에는 계셨는데. 이웃에 수소문 해보았지만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 저녁 무렵에 어머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웃에 사시는 분이 아침 일찍 장터에서 어머니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날 소식의 전부였다. 밤이 늦도록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고 우리는 걱정 속에 하룻밤을 보냈다. 그 다음 날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긴 여름 해도 서산을 넘어간 지 한참. 어둠이 내린 텅 빈 마당에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것도 군에 간 형의 손을 잡은 채. 그날 저녁의 놀라운 순간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거의 매일 TV나 신문 등을 통해 사회적 관심사항들을 보고 듣는다.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내용을 자주 보고 싶다. 서로를 칭찬 해주고 베풀고 보듬어 주는 넉넉하고 따뜻한 모습들이 보고 싶다. 그러나 그건 내 욕심일 뿐이다. 상대의 약점만 들추어내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끝없이 깎아 내리는 내용만 보게 되니 ! 세상은 본래 이런 모습 이었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틀 만에 아들 손을 잡고 돌아오신 어머니. 우리는 마당의 평상에 둘러 앉아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초저녁에 피워놓은 모깃불에서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몇 달 전 받은 아들의 편지. 부대의 주소가 적혀 있는 편지 봉투를 몇 번이고 꼭꼭 접어서 안주머니에 챙겨 넣고 강원도 홍천 어딘가에 있을 아들의 부대를 찾아 천리 길을 나선 것이다. 어머니가 장에 들른 것은 아마도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새벽에 길을 나선 어머니는 무려 일곱 번이나 차를 갈아타고 또 걸어서 깜깜한 밤에 부대 앞에 도착하였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위병에게 부대와 우리 집 주소가 앞뒤에 적힌 편지 봉투를 내 보이며 아들 찾아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바로 부대장의 집무실로 안내 받아 들어갔다. 어머니는 부대장에게 또 그 편지 봉투를 내 보이며 아들이 보고 싶어 왔다고 했다. 편지 봉투에 적힌 앞뒤의 주소를 한참 들여다보던 부대장은 먼 길을 오면서 불안하고 초췌한 모습이 된 어머니를 보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고는 경남 밀양군 초동면이 여기서 얼마나 먼 곳입니까?” 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새벽에 나서서 지금 도착했는데 차는 일곱 번을 갈아탔고 걷기도 많이 걸었습니다라고. 부대장과 어머니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부대장은 바로 자신의 지프에 형과 어머니를 태우고 직접 운전해서 홍천 읍내로 향했다. 숙소를 정해서 방에 들게 하고는 어머니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사왔다. 그리고 돌아갔다. 여섯 달 만에 만난 아들과 머리를 나란히 하고 그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형이 귀대 하려고 하는데 부대장의 지프가 도착했다. 운전병의 손에는 이등병 정?? 에게 7일 동안의 특별휴가를 명함이라고 적힌 휴가증이 들려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니가 참 내가 염치도 없지. 부대장님께 아무것도 대접도 못하고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하셨다.

염치(廉恥)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중요한 윤리 도덕의 개념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살면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것이다. ()청렴하다’, ()부끄럽다라는 뜻으로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란 뜻이다. ()는 글자 그대로 귀()와 양심()이 합친 글자다. 마음의 가책을 느끼면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 얼굴과 귀가 빨개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빈손으로 찾아가 아들의 특별 휴가를 얻어낸 어머니는 염치없는 사람이었을까? 어찌 그런 특혜를 생각인들 하였을까? 거절하고 혼자 내려왔어야 했을까? “어머니, 저는 지금 생각해도 그 부대장님은 너무 멋진 지휘관이었고 부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훌륭한 군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식사랑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신 훌륭한 어머니셨습니다.”

형은 오는 데 하루 가는 데 하루 이틀을 길 위에서 보냈고 온전히 5일을 가족들 곁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어머니- - . 두 분 계시는 그 멀고 높은 곳은 아직도 사람냄새 가득한 아름다운 곳인지요? 여기는 참 많이 변했습니다. 염치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하루하루 조심하지 않으면 큰 일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형과 어머니가 손을 잡고 나타난 그날 밤처럼 오늘도 무척 덥습니다. 그래도 모깃불은 없습니다.”

 

정상진/前 밀양초등학교 교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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