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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고무신

[2021-10-29 오전 9:55:53]
 
 
 

학교와 우리 집 사이의 거리가 십 리쯤 된다. 그러니 나는 매일 이십 리의 신작로를 걸어서 등하교 했다. 초등학교 6년을 마칠 때까지 수십 번의 계절이 지나갔고 그동안 코흘리개 어린이가 의젓한 소년으로 자랐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중간쯤에는 샛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30미터쯤의 콘크리트 다리가 하나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았던 시골소년에게 그 다리는 꽤 길어 보였다. 그리고 강도 넓어 보였다.

3학년 때쯤이던가. 며칠간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고 하얀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로 높이 올라가던 날 형이랑 둘이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강의 가장자리에는 풀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은빛의 갈대가 햇볕에 반짝이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다리 위를 걷다가 신발 날리기 시합을 하자고 형에게 제안했다. 형과 나는 매주 하루만 같이 하교한다. 다른 날은 수업이 끝나는 시각이 다르다. 형과 같이 집에 오는 날은 심심하면 자주 신발 날리기 시합을 했다. 형은 나보다 키가 훨씬 크고 다리가 길었으므로 언제나 형의 신발이 멀리 날아갔다.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이마에 가운데 손가락을 튕겨서 맞추는데 형은 내가 많이 아프지 않게 손가락의 힘을 빼서 살짝 튕겼다. 어떤 때는 형이 일부러 져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손가락에 힘을 가득 넣어 세게 튕겼다. 그래도 형은 그냥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날도 내가 두 번이나 졌다. 한 번만 더 하자고 내가 졸랐다.

세 번째 시합에서 일이 터졌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길게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내뻗었다. 그 순간 내 발을 벗어난 오른쪽 고무신이 다리 난간을 넘어 강물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져서 형을 쳐다보았다. 형은 달려-” 하고 소리치면서 다리 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았다. 나도 형의 뒤를 따라 달렸다. 다리를 지나서 우리는 강둑에 올라서서 강물을 쳐다보았다.

고무신 한 짝이 강물에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강둑을 따라 한참을 뛰어갔지만 우리는 강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며칠간 내린 가을비로 강물이 많이 불어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휘돌아 흐르는 강물 따라 내 고무신 한 짝도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 머릿속은 갑자기 복잡해졌다. 어머니로부터 꾸중 들을 일과 내일 당장 학교에 신고 갈 신발이 없다는 두 가지 걱정 때문이다. 그날 잃어버린 신발은 추석 때 어머니가 사주셨는데 한 달 정도 밖에 안 됐다.

, 엄마가 부지깽이로 날 때리지는 않겠지, 뭐라고 말해야할까? 그리고 내일 학교에 신고 갈 신발이 없어서 어떻게 하지?”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먼저 신발 날리기 놀이 하자고 했다고 엄마한테 말할게. 마루 밑에 헌 신발이 있는지도 찾아보자. 신발이 있어도 너에게는 좀 크겠지만 며칠만 신고 다니면 다음 장날에 새로 사주실 거야.”

그날따라 형이 참 믿음직스러웠다. 지난 일요일, 엿장수가 왔을 때 구멍 난 내 헌 신발을 엿으로 바꿔 먹었다. 똑같이 나눠 먹자고 형이 말했지만 형에게는 조금만 떼어주고 내가 다 먹어버렸다. 그때 형에게 좀 많이 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크게 꾸중하지 않으셨고 다음 장날에 새 고무신을 사주셨다.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열 살짜리 소년의 아픈 기억이 세월이 지나면서 가슴 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오래도록 간직해왔던 그 아름다운 추억이 이제 조금씩 잊혀 가는듯해서 슬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한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상실이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매달려 보지만 불가능한 일이란 걸 금방 깨닫게 된다.

가진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사용법을 잊게 되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이름을 잊게 된다. 꽃을 보면 그냥 예쁘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예쁘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꽃의 이름을 잊지 않고, 꽃은 더 예쁘게 피어난다. 나는 우리 집 정원에 철따라 피고 지는 많은 꽃들에게 자주 이름을 불러주며 참 예쁘게 피었구나, 물이 먹고 싶나 보다라고 말해준다.

잊는다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가졌어도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잃어버린 물건일 뿐이다. 가까이 지냈던 많은 사람들도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본 지 오래되어 이름을 잊게 되면 나에게서는 잃어버린 사람이다.

우연히 길에서 반가운 얼굴을 맞게 된다. 서로 손을 마주 잡고 그 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서로 함께했던 순간들이 잠시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런데 마주 선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기 때문이다. 우연의 만남이 없는 이상 서로가 잃어버린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잊게 되는 것이 명사다. 명사 중에서도 고유명사를 더 빨리 잊는 것 같다. 모든 고유명사는 오직 대상이 하나밖에 없으니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빨리 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기억부터 하나씩 먼저 잊혀지고, 버리고 싶은 기억은 가장 나중에 떠난다는 것. 사람의 기억이란 물건을 버리듯 마음대로 골라서 버릴 수 없는 까닭이다.

지난 추석 때 고향에 성묘 갔다가 그 다리 위를 걸어서 지나가보았다. 옛날의 그 강이 아니었다. 높다랗게 새 다리가 놓여 졌고 강바닥이 깨끗이 정비되었다. 전에는 차를 타고 그 다리 위를 지나면서 내 고무신 한 짝이 아직도 썩지 않았다면 저 강바닥의 어디쯤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강가의 무성했던 수초들과 풀단풍도, 은빛의 갈대숲도, 굽어서 느리게 흐르던 동요 속의 강물도.

그날 잃어버린 고무신 한 짝에 대한 기억은 어쩌면 가장 오랫동안 내 가슴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내와 나는 집에서는 고무신을 즐겨 신는다. 마당 넓은 집에 살다 보면 채소밭에서 잠시 일을 하거나 정원을 돌볼 때 신발 속에 흙이 잘 들어온다. 그때마다 쉽게 물로 씻어서 다시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보! 우리 고무신 날리기 시합 한 번 합시다

언제나 내가 이긴다.

시골 소년으로 자란 내가 도시 소녀로 자란 아내에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놀이다.

 

정상진/前 밀양초등학교 교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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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강을 건너 비탈길을 걸어 다녔던 자박바박 달빛 강변 걸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2021-12-1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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