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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밀양인의 성공스토리 북콘서트

[2020-02-21 오후 4:38:38]
 
 
 

 

재부밀양향우회(회장 현영희)가 지난 7일 오후 630분부터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자랑스러운 밀양인의 성공스토리 북콘서트를 개최해 참석한 200여 명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재부밀양향우회는 6·25사변이 일어났던 1950년 정초에 재부밀양군향친회로 창립되어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70주년을 맞으며 성공한 밀양인 11명을 선정하여 자랑스러운 밀양인의 성공스토리제하에 꿈이 있는 사람이 꿈을 이룬다라는 부제를 붙여 1년간에 걸쳐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이날 그 주인공들과 함께하는 북콘서트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감동의 스토리가 있는 그 현장을 찾았다.

 

Story를 찾다

이 책의 시작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고향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좌절 없는 생의 좌표를 제시하겠다는 재부밀양향우회 현영희 회장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어느 날 밀양출신으로 ()콜핑을 운영하고 있는 박만영 회장과의 향우골프 모임에서 젊은 날 먹을 것이 모자라 내일 먹을 라면을 전날 저녁에 미리 끓여 두었다가 퉁퉁 불은 라면을 아침에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던 현영희 회장.

고향 사람 중에는 이러한 아픔을 딛고 일어선 분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과 결코 아픔이 좌절이나 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고향 후배들에게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주변의 자문을 구해 추진위원을 구성했다.

그리고 전국 100만여 명의 밀양인 중 경제·문화·법조·종교·사회공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인생 이야기와 후배들과 공유할만한 내용이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데 초점을 두어 자랑스러운 밀양인 11명을 추천 받아 인터뷰에 나섰다.

여전히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는 주인공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나누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열정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인내의 힘겨운 터널을 지나 그렇게 책이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날 북콘서트의 시간은 더욱 소중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자랑스런 밀양인 성공스토리

김신 전 대법관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나의 뿌리는 밀양이다. 부모님을 비롯한 친가, 처가, 외가 모두가 밀양인이고 밀양인들이 나를 밀양인으로 인정하고 있고, 모든 밀양인에게 흐르는 자랑스런 밀양정신이 나에게도 있다. 김원봉 장군은 나의 집안 어른이기도 하며 그분의 고모부인 황상규 선생은 나의 할머니의 오빠가 되신다.

나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고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보조기를 해야 걸을 수 있는 장애인이다.

의과대학을 희망하였으나 장애의 벽을 넘지 못했다. 부득이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법조인으로 진로를 바꾸고 서울대학법대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1983년 부산지방법원 판사 임용을 시작으로 세월이 흘러 20188월 대법관 임기를 마칠 때까지 356개월 동안 법관으로 근무했다. 퇴임 후 현재까지 동아대학교 석좌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만 위하고 잘난 체하는 꼰대로 늙고 싶지 않다. 청년들과도 대화가 통하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가능하면 청년들이 재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을 하고 싶다. 우리 밀양인들과 이 일을 함께 하면 좋겠다.

 

김영기 화미주 인터내셔널 회장

19609월 밀양읍 용평리에서 2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공식 학력은 중졸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탓이다. 열일곱 살에 소년가장이 된 후에는 머슴살이를 비롯해 40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부산·울산·경남권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미용산업 프랜차이즈 화미주 인터내셔날 그룹을 이끌고 있다. 70여 개 지점에 직원만 800명을 웃돌고 연간 고객 100만 명, 연매출 400억 원 전후의 알짜 기업이다.

나의 성공 비결은 부지런함이다. 일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머슴살이도 그 중에서 일등하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 배움이 더해져야 한다.

일터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혁신할 것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난 정말 잘할 수 있다.

 

박만영 콜핑 대표이사 회장

꼴깍! 입안에서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듯했다. 연탄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 속에 든 라면을 보며 그랬다. 그러나 내일 아침을 위해 참아야 했다.

당시 부산 서면에 있던 광덕물산이란 와이셔츠 만드는 회사에 미싱 기사로 일하던 우리는 월급이 5,000원이 채 안 되는 처지였는데 방 월세가 5,000원이었으니 허투루 돈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

회사에 가면 식사가 나오기 때문에 잔업이며 야근을 그야말로 밥 먹듯 했는데, 어쩌다 집에 일찍 오는 날은 저녁을 거르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라면을 끓여 저녁밥과 다음 날 아침을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한창 때인 나와 내 친구는 그걸 나눠 먹으며 객지 생활을 버텨야 했다.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었던 1975년 부산에서 내 청춘의 첫 발을 그렇게 힘겹게 내디뎠다.

당시의 나로선 40년 후 여러 개 회사를 운영하며 연매출 3,000억 원을 넘는 기업가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박정진 전 부산시의회 의원

살아오면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고 할 지 모르겠다. 적어도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그렇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서울대학교 상대를 나왔지만 나만의 부를 쌓은 것도 아니고, 중년이 되어 뒤늦게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인의 꽃이라는 국회의원이 되지도 못했다. 선거에 네 번 나가 두 번 승리하고 두 번 졌으니 명예를 누렸다 하기에는 부족한 셈이다.

그래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나는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어주고 싶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도전을 거듭하여 여성 최초란 타이틀을 여럿 얻었기에 갖는 자부심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큰 재산을 모으지도, 빛나는 명예를 얻지도 못했지만 자식들에게, 그리고 주위의 젊은이들에게 자신 있게 나처럼 살아라고는 말하지 못할지언정 나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조언할 정도의 삶은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손기창 경창산업 명예회장

1923년 음력 824, 밀양군 산내면 송백리 양송정에서 태어났다. 위로 딸 다섯을 낳고 여섯 번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정말 귀한 자손이었다. 1930, 내 나이 일곱 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1년 만에 아버님이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 새 장가를 가자 외가에서 빌려주었던 논의 상당 부분을 떼어가 버렸다. 그 바람에 우리는 하루아침에 빈농이 되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왜소한 몸으로 공장에서 일하자니 얼마나 고되었을까. 고국의 동생들과 함께할 날을 고대하며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린 밤이 얼마나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90 평생이 꿈만 같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칠전팔기가 아니라 구전십기의 정신으로 꿋꿋이 버텨냈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내 인생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손숙 배우

내가 태어난 곳은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죽서마을로 8촌까지 모여 사는 안동 손씨 집성촌이다. 천석꾼 집안이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으나 내가 어릴 적엔 천석은 아니라도 체면치레를 할 만큼의 땅은 물론, 안채와 사랑채 등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하인들도 여럿 있었다.

문학소녀이던 나는 고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서울 남산드라마센터에서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접하게 됐다. 이 작품은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전율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갑자기 모든 게 연극으로 쏠렸다.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반은 현실에서, 반은 무대 위에서 산 것이 내 인생이다. 그러니 때론 뭐가 진짜 내 인생인지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마치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현실의 내가 나인지, 무대 위의 내가 나인지.

 

임수복 ()강림CSP 회장

나는 194741녀의 차남으로 밀양시 삼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있는 조선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였다. 8·15 광복을 맞아 아버지는 그동안 벌어둔 돈을 모두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벌어온 돈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사는 게 풍족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찹쌀떡 공장도 만들고 과자 공장도 만들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몇 년 만에 우리는 가진 돈 모두를 잃고 거지 아닌 거지 신세가 되었다. 이런 형편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돈에 눈을 떴다. 운이 좋게 나는 부산 중구 창신동에 있는 부산우체국 소관의 저금관리국 원무과에 합격해서 학생들이 맡긴 예금 이자를 계산하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밀양을 떠나게 되었다.

나의 좌우명은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게 살자이다. 이 말은 자기를 희생해야만 사업을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하지만, 돈은 물과 같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자기를 높이면 높일수록 물()은 상대방으로 가는 것이고,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물()이 자기에게 온다. 때문에 겸손해야 하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

 

정문흠 ()태영 회장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 삶에는 세 번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첫 번째는 가정 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으나 그 길을 걷지 않고 부산에서 가장 큰 운수회사의 취업을 택했다.

두 번째는 15년 동안 배차부터 경영까지 배우고 적자와 부도 직전의 회사를 살려내며 오너의 신임을 얻고 있던 당시 나의 길을 향해 과감히 회사를 나오기로 했다.

세 번째는 회사를 나온 뒤 마을버스로 내 사업을 시작했다. 대형마트 셔틀버스 업자 선정 과정에서 선택한 우리 회사의 적중성 있는 선택, 그리고 계약 당시 사후 발생문제에 대한 예측력과 관철을 위한 노력이었다.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것이 달라졌고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풍송(작사/작곡가, 부산MBC 재경사우회장)

1941년생인 나는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집 뒷마당에 있던 대나무를 잘라 구멍을 적당히 내어 피리와 퉁소를 만들었고, 미군용 전화선에서 강철선을 뽑아 널빤지에 못을 박고 연결해 하프 비슷한 악기도 만들었다.

그것을 가지고 이러저런 곡들을 연주해 주변으로부터 신동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1964, 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 작곡전공 신입생시절 나는 <오 수재너>, <스와니강> 등을 작곡한 미국의 스티븐 포스터 같은 국민 작곡가를 꿈꿨다.

그 이후 줄곧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품격 있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창작의 길을 걸어왔다.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아름다움을 주는 노래를 남기고 싶고,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명곡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가슴 깊이 품고 있다.

국민과 국가에 유익한 일을 위해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로 헌신하려 한다.

 

한백술 주식회사 중앙카프링 대표이사 회장

밀양시 무안면 신법리로에서 1940년에 태어났다. 내가 고향 밀양을 떠난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당숙이 결혼 후 인사 차 집에 들렀다 나를 보시고는 사내는 이제 큰 도시에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한다며 끈질기게 할아버지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배움은 없어도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숙네 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다. 나에게 회사는 어린 시절 나를 품어준 산이요, 들이며 냇가이다. 나를 살게 해주었으며 나를 성장시켜준 거름과도 같다. 나는 아직도 내가 더 자라야 하는 나무로 남아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황철주 전 가톨릭 부산교구장

나는 1953년 밀양군 부북면 지동에서 22녀 중 둘째, 아들로는 맏이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6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뿌리 깊은 교우 가정으로, 초대 부산교구 교구장 최재선 주교와 대구대교구 7대 교구장 서정길 대주교를 비롯한 9명의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한 신앙의 명가라고 할 수 있다. 19832월에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사제품을 받고 망미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1년간 사목활동을 한 후 3년간 망미 본당 주임신부를 맡았다. 이후 부산 가톨릭대학교 교수, 전하 본당 주임신부, 메리놀병원 관리부장, 선교사목국장, 사무처장을 지내고 20061월 부산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2006224일 남천 주교좌성당에서 정명조 주교의 주례로 주교 서품식을 받았다. 보좌주교 서품식을 받을 당시 안식년 때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면서 손님을 모시던 심정, 그때 배운 마음으로 주교직을 수행하기로 다짐했다.

 

운명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재부밀양향우회 현영희 회장은 1951년 밀양시 가곡동에서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나 경남여고와 부산교육대학교졸업하고 당감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교단에 섰다.

결혼 후 육아문제로 교사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사회와의 단절감으로 고민하다 본인과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중앙대학교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쳐 가며 32년 동안 유치원을 운영했다.

이후 부산유치원연합회회장, 4·5대 부산광역시의원, 19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당시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지만 송사에 휘말리면서 뜻을 펴지 못하고 자책감과 우울증으로 칩거에 들었을 무렵 향우회장직의 제의를 받고 고민 끝에 수락하기에 이른다.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직재정비 노력과 함께 20163월 취임식을 거행했다.

취임식 전 30여 명이 활동하던 향우회 회원이 이날 취임식에 600여 명이 참석해 새로운 희망을 예고했고, 그날 현영희 회장은 나는 할 수 있다(I can do it)’를 외치며 단합을 호소했다.

이후 학교·지역·직장향우회와 읍··동 향우회 활성화를 통한 조직정비에서부터 산악회와 골프회 조직, 밀마루합창단 창단, 청소년을 위한 희망음악회, 밀양 농·특산물 큰잔치, 향우자녀 고향방문행사, 추억의 체육대회, 임원 해외연수, 친선골프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2018년 회장 연임 정기총회 자리엔 읍··동 단위 대표들만 900여 명이 참석해 변화를 실감케 했다.

베트남 향우임원 워크숍을 다녀온 2019년 말, 가수 인순이를 초청하여 개최한 송년 가족의 밤행사에는 3,500여 명이 찾아와 KBS홀을 가득 메우며 그 열기는 극치를 이루었다.

밀양시는 지난해 제24회 밀양시민의 날 기념식에서 제21회 밀양시민대상(봉사부문)을 수여하며 그 공적을 기억하기로 했다.

현영희 회장의 4년 임기 중 마지막 행사로 기억될 202027일 개최된 자랑스러운 밀양인의 성공스토리 북콘서트행사에 박일호 시장이 참석하여 축하의 뜻을 전하였고, 현영희 회장은 박일호 시장에게 100권의 책을 전달했다.

이 책은 부산시와 밀양시 도서관에 비치하고, 서점을 통해서 판매도 될 예정이다.

현영희 회장은 운명은 능력보다 힘이 세다고 합니다. 지난 4년의 시간은 어쩌면 저에게 운명 같은 날들이었습니다라고 회고하고 함께해준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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