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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한 잔?

[2021-07-27 오후 3:51:13]
 
 
 

참 묘한 것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고, 친한 사람들은 더 친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 누군가 가져온 슬픔은 분해 해버리고, 누군가 성취한 기쁨은 배가시키는 능력을 가진 것. …… 술이다.

처음 보는 남자 세 명이 앉았다. 어색하다. 할 말이 없다. 몇 마디 오가는 말들이 길을 잃는다. 공감? 그런 거 당연히 없다. 뚝뚝 끊기는 대화처럼 시간도 뚝뚝 끊기며 힘들게 흐른다. 그 순간 고맙게도 음식이 나오고 술이 상위에 오른다. 몇 순배 권하고 잦는다. 놀랍게도 대화라는 게 되기 시작한다. 뚝뚝 끊어지던 시간이 동글동글 굴러간다. 몇 순배 더 돈다. 이제 오가는 말 들이 신이나 날아오른다.

다음 날이다. 약간의 숙취 사이로 어제의 일들이 떠오른다.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그런 분위기였고, 그렇게 헤어졌었지. 그 사람 좋은 사람이던데.’ 어느새 약간 친한 사람이 되어 있다.

다른 형태의 다음 날이다. 심한 숙취 사이로 어제의 일들이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좋았던 것은 틀림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많이 친한 사람이 되어 있다. …… 참 묘하다.

초면인 사람을 친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을 지낸 이 물질은 가족모임, 친구모임, 동창회, 친목회 등 친선을 도모하는 수많은 자리에서도 예외 없이 그 능력을 발휘하여, 건강과 영원한 우정을 위하는 잔에서 출렁인다. 뿐인가. 비즈니스를 도모하는 자리와, 직장 또는 조직의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에서도, 사업의 번창과 목적 또는 목표 달성과, 무궁한 발전에도 그 영향력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 참 묘한 것이다.

서로 잘 맞고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을 통칭하여 궁합이라고 한다면, ·여 간의 궁합은 물론, 사람과 사람과의 궁합도 있을 것이고, 사람과 사람에게 소용되는 각종 물질과의 궁합도 있을 것이며, 물질 들 끼리의 궁합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음식궁합인데, 여기에서도 술은 맛없는 음식은 그나마 먹을 수 있게 하고, 맛있는 음식은 더 맛있게 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바삭하게, 그러나 속은 촉촉함이 살아있는 두툼한 삼겹살 한 점에. 잘 삶겨 김치에 돌돌 말린 수육 한 점에. 아작이는 콩나물과 부드러운 생선살과 매콤함이 어우러진 해물 찜 한 젓가락에 소주 한 잔의 짜릿함은?

잘 삭힌 홍어와 잘 삭은 김치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따뜻하게 데운 두부위에 볶은 김치를 올려서. 탱글탱글한 도토리묵에 산나물 무침을 듬뿍 올려서 쭉 들이키는 막걸리 한 잔의 걸쭉함은?

치킨에 맥주 한 잔은 이미 치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버렸으니 말 할 것도 없는 환상의 조합이고, 술자리 에피타이저인 소맥도 그에 못지않은 조합이지만, ‘! 세상에 맥주 첫 모금 맛만 한 것은 없어.’라는 소설 속 대사가 절로 떠오르게 하는, 땀 흘린 후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청량함은 또?

회 한 점에 정종 한 잔, 치즈나 크랙커 한 조각과 와인 한 잔, 맛있는 중국요리에 고량주 한 잔도 입맛을 다시게 하는 것이니, 술만큼 다른 음식과 잘 맞는 궁합도 없을 듯하다. …… 참 묘한 물건이다.

정이 있으면 부가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이, 장점이 있으면 당연히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이치이다. 술 역시 기쁨은 더 기쁘게 하고, 슬픔은 반감시키고, 사는 걸 즐겁게 하는 장점이 있으나 만만찮은 단점도 있는데, 주사와 과하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는 기분이 좋은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아서, 술을 마시면 기분이 나빠지고, 과격해지고, 공격적이 되면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다. 이뿐이랴. 뜬금없이 우는 사람, 시부렁시부렁 욕을 해대는 사람, 길길이 날뛰는 사람, 쉼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 했던 말을 백 번쯤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주사는 본인은 즐거우나(?) 주변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데, 웃기는 건 다음날 모두 기억하는데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안 한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긴 한데)이다.

주사가 타인을 괴롭게 하는 나쁜 점이라면, 건강을 해치게 되는 건 본인을 괴롭히는 단점이다.

우리나라는 배달의 민족답게 배달의 천국인데,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옛날에도 그랬으니, 시골 구멍가게 아들인 나는 오토바이를 탈 수 있을 때부터 이 동네 저 동네로 술 배달을 다녔다. 주로 한 되들이 소주 10병씩 들어있는 궤짝을 배달하곤 했는데, 알콜 함량 25%의 이 독주를 매일 한 되씩 마시고는 정확하게 10일 뒤에 다시 배달을 요청하는 어른들이 계셨다. 아침부터 마시기 시작하여 저녁 무렵이면 병을 비우는데, 이 분들의 특징이 소금 한 알, 김치 한 쪽을 안주 삼거나, 아예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한다. 과한 음주로 새까맣게 탄 얼굴과 바싹 여윈 몸이 건강할리 없으니, 대부분 장수하지 못했음도 당연한 결과였다.

술은 인간의 성품을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술은 똑같으나 마시는 사람에 따라 좋은 것이 될 수도,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바람직한 쪽이 어느 쪽인지는 누구나 다 알 테니, 이참에 좋은 분들과 술이나 한 잔 할까?

 

김종열/前 농협 밀양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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