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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보은

[2021-10-12 오후 3:49:18]
 
 
 

매운 고추를 곧잘 드시던 아버지가 나는 싫었다. 독하고 모진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매운 고추를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먹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괴물이거나 무서운 어떤 존재일거라는 발칙한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사사건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은근히 마음속으로는 배금주의자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주고 아무런 걱정 없이 살도록 키워준 아버지에게 그렇게 나는 배은망덕한 딸년이었던 것이다.

위장을 찌르는 듯 그 알싸한 느낌. 입 안이 폭발할 것 같은 캡사이신의 맛을 지긋이 참아보는 미묘한 쾌감을 알게 된 건 내 나이 사십을 훌쩍 넘기고부터였다. 삶이 지긋지긋하다는 느낌과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결국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지가 꽁꽁 묶여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 비로소 매운 고추의 깊은 풍미를 즐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 옛날 젊은 시절의 아버지보다 더 매운 고추를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억누를 길 없이 활활 타는 가슴에 이열치열로 내가 나를 이겨내는 소박한 힐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도 나처럼 이루기 어려운 꿈이 많았던 걸까. 부득이 현실에 발을 붙여야 했을 상황들을 짐작해본다. 어찌 이리도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없을까. 시아버님과는 그렇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면서.

나의 귀엽고 예쁜 미소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가장 고마운 유산이다. 어떤 이는 나의 미소에 영혼이 청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아버지는 계면쩍은 듯 수줍은 미소를 가진 여린 남자였지만, 거친 세파에 함부로 던져져 어떻게 견뎌냈을지 그의 용감한 활동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그득해지는 자부심이 선다. 아마도 드센 어머니의 덕을 보셨기도 했겠지만 아무튼 얌전해서 괜히 미안한 그런 남자셨다. 나도 그렇다.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괜히 몸 둘 바를 모르는 천진함과 매서운 자존을 함께 가진 독특한 매력.

지난 봄 유독 매운 고추를 잘 먹는 딸을 위해 엄마는 옥상 화분에 고추 모종 다섯 포기를 심었다. 두 포기는 시들시들 더위를 이기지 못했는지 진드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다. 남은 세 포기마저 진드기의 끈질긴 공격에 사투를 벌일 즈음 아이고 안 되겠다. 엄마는 포기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진드기에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고작 세 포기조차 못 살릴까보냐. 매일 틈나는 대로 올라가 진드기를 일일이 손으로 잡기 시작했다. 이파리 앞뒤며 줄기까지 달라붙어서 진드기에게 시달리고 있는 고추모종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둘이서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장마가 지나고 불볕더위가 다가오자 마침내 고추나무는 건강한 모습으로 꽃을 피우더니, 다른 집 고추나무보다 훨씬 더 많은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앞집 아주머니는 내 평생 이렇게 고추가 많이 열리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고 했을 정도다. 고작 세 포기인데도 매일 두세 개씩 따서 된장과 함께 밥상에 오르고 있다. 고추나무는 마치 나에게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정말 고마워라고.

그런가하면 우리 집에는 열두 살짜리 쟈스민 화분이 한 그루 있다. 막내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선물로 사들고 온 향그런 꽃나무다.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는데, 어느 해 병에 걸려 잎마져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욕실에 화분째 들고 가서 샤워기로 이파리와 가지마다 꼼꼼히 씻겨서 병명도 모르는 치료를 나름대로 했지만,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곧 죽을 것만 같아서 몇 년 전 아버지께 살려보시라고 화분을 갖다 맡겼다. 그러나 사실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내가 니 꽃나무 살려놨다하는 소리를 듣고 베란다로 뛰어가 보니, 과연 싱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아버지의 담배 연기 속에 어떻게 살아났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그렇게 회생한 쟈스민은 봄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리에게 향기를 선사해왔다.

쟈스민은 살려냈지만 아버지는 지난해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알량한 베란다 화단에는 올봄에도 꽃들이 다투어 피었다. 내가 심어놓은 해바라기까지도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있다. 그런데 여름이 다가올 즈음 쟈스민은 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일년에 한번씩 꽃을 피웠었는데 올해는 두번이나 꽃을 피워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마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고 살려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식물심리학을 활용해 범인을 찾아내는 사건에서 식물이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찌 식물이라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 있는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할 다정한 이웃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귀한 경험이었다.

 

정희숙/(사)기회의 학숙 총무이사,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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