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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황(女皇)의 행차-3

[2021-07-14 오전 10:27:03]
 
 
 

4장 운막향(雲幕鄕)의 후예들

여황(女皇)의 행차-3

 

예전에 부친상을 당하여 멀리 의성에 있는 친정을 다녀올 때 어깨의 살가죽이 벗겨져서 피를 흘리는 가마꾼들을 위하여 용화 부인이 스스로 가마에서 내려 가지고 산고개를 직접 걸어서 넘었다는 옛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었지만, 노구의 그녀를 모시고 가는 이번 행차에서는 그런 요행도 기대해 볼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래도 용화당 큰 마님 덕분에 복에도 없던 표충사 큰절을 귀경하게 생겼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또 있겠노? 표충사라 카모 옛날에 왜놈들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온갖 도술을 부려 가지고 쪽발이 놈들이 말만 들어도 벌벌 떨게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사명대사의 사당이 있다는 유명한 큰절 앙이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이와 처지에 따라서는 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른 법이라, 이번 불공 길에 종가의 가마꾼으로 쌍수를 들고 지원 나온 중산의 운당(雲堂) 첫째 종조부 댁의 머슴인 종팔이가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이 싱글벙글하며 내뱉는 말이었다.

그는 한창 팔팔한 나이에 구경길 삼아 주인집의 큰댁 일에 나선 길이라 힘이 절로 솟는지 가마를 메고 가서 태산이라도 덜렁 떼어 올 기세다.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만 있는 줄 아나? 임진란 때 입었던 가사 장삼하고 승군을 지휘할 때 불었다는 소라 나발에다 임금님이 내린 지휘봉도 있다꼬도 안 하더나! 그라고 요새도 표충사에서는 힘이 넘치는 젊은 중들이 사명대사가 했던 것처럼 왜놈들을 몰아낼 준비를 한다꼬 죽창을 들고 밤낮으로 산을 오르내리며 신체 단련을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던데, 역시 보통 절간은 아닌 모냥이라!”

그 역시도 같은 마산리 출신의 종팔이와 한통속으로 자주 어울리는 중산의 초당(草堂) 둘째 종조부 댁에서 지원 나온 또출이라는 젊은 머슴이었다. 젊은 피가 뜨거운 가슴 속에서 지글거리는 그들에게는 무거운 가마의 무게를 감당하며 걸어야만 하는 왕복 이백 리의 먼 길도 구경삼아 즐길 수 있는 원족(遠足) 나들잇길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보게들, 표충사의 젊은 중들이 왜놈들을 몰아낼라꼬 죽창을 들고 설친다는 그 말이 사실인가?”

표충사 절에 유람이나 가는 듯이 떠들어대는 그들의 얘기에 내심으로 귀가 솔깃해진 지 서방이 관심을 나타내며 묻는다. 종가에서 가마꾼 노릇을 하며 지난 반생을 살아 온 그도 혹시 행선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일 때문에 무슨 요행수라도 생겼으면 하는 기대감에서 해 보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우리끼리 한 말인데, 신분이 천한 종놈들 주제에 그런 건 와 묻능교? 남의 집에서 같이 일하고 있으니까 우리도 당신네 종놈들하고 똑 같은 줄 아요?”

표충사 얘기를 먼저 끄집어낸 종팔이가 아버지뻘이나 되는 지 서방과 오 서방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하무인격으로 눈알을 부라린다. 그가 하는 말 속에는 새경을 받고 계약직으로 일하는 머슴이라는 자기네의 신분이 종놈들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우월감이 실려 있었다.

, 그야 우리가 가야 할 멀고 먼 절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예삿일이 아니라 싶어서 묻는 말이 아닌가, 이 사람아!”

나이 지긋한 지 서방으로서는 아무리 인륜 도덕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진 왜놈들의 세상이기로서니 새파랗게 젊은 남의 집 머슴 놈이 주인댁 종가에 와서 이렇게 개망나니 같은 짓을 해도 되느냐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팔이의 기세가 만만치가 않고, 또한 그의 말이 전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어서 지 서방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도 오히려 그의 심사를 달래기에 바쁘다.

남의 일에 머가 그리 궁금하요? , 종갓집 나리들한테 표충사 절에 가면 위험천만한 일이 생길 기이라꼬 우리 이름을 대면서 출행을 몬하게 초를 치며 그대로 낼름 일러바치게요?”

이번에는 또출이까지 합세하며 무거운 가마를 메어 보기도 전에 젊은 혈기로 객기를 부리면서 노쇠한 종가 하인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을 듯이 나서는 것이다.

하기야 머슴들이 하인들을 얕잡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난 갑오개혁 때 노비제도가 폐지되면서 노비 문서가 불태워지고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는 기회가 있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그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 종살이로 의탁할 일가친척이나 생계 수단이 전무한 상태로 하루아침에 종살이에서 해방된다고 한들 상전의 집 대문간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집도 절도 없이 굶주림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지금까지 종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자유의 몸으로 방면하려는 상전들에게 오히려 애탄글탄 매달리면서 종살이를 구걸하는 웃지 못할 일들을 경험한 끝에 도로 제 자리에 눌러 앉은 축들이 대다수인 것이다.

이 사람아! 일러바칠 일이 따로 있지, 아무려면 그런 걸 일러바치겠나?”

지 서방은 잘못하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겠다 싶었는지 한 옆으로 비켜나 앉으며 먼 산으로 시선을 돌리고 만다.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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