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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황(女皇)의 행차-4

[2021-07-27 오후 3:35:23]
 
 
 

4장 운막향(雲幕鄕)의 후예들

여황(女皇)의 행차-4

 

그라모 남이사 무신 소리를 하든지 잠자코 듣고만 있을 일이지, 와 오지랖 넓게 나서느냐 이 말이요!”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며 가마를 메고 가야할 표충사 절간의 중들 이바구를 하니까 그 먼 곳까지 우찌 갈꼬 걱정이 되어서 무심결에 해 본 소리 앙이겠나? 자네들이사 마음만 묵으면 가마꾼 노릇을 몬하겠다고 지금이라도 당장 손을 털고 뒤로 물러날 수도 있겠지마는, 우리 겉은 종놈들은 그럴 처지가 몬 되어서 하는 말이 앙인가? 그러니 언짢아하지 말고 좋게들 생각하게나!”

머나먼 가맛길을 앞에 놓고 난감해 하던 오 서방까지 나서서 비위를 맞추며 몸을 낮추는 바람에 양측 간의 언쟁은 일단 그것으로 뒤탈 없이 그대로 가라앉고 만다.

그러나 서 서방은 기대했던 요행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혼잣말로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표충사 중들이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기이 사실이라모 노 마님께서는 머 할라꼬 멀리 있는 그런 위험한 절간에 불공하러 가시는지 모르겠구마!”

시 살 묵은 얼라도 앙이겠고, 우리보다 유식한 웃전들이 그것도 모르고 그 먼 곳까지 불공하러 가시겠소?”

종가의 젊은 가마꾼 하나가 나이 지긋한 자기네 집 하인들이 새파란 남의 집 머슴들한테서 봉변을 당하는 게 보기가 딱했던지 볼멘소리로 한마디 한다.

하기사 황새 겉은 웃전들의 속을 뱁새 겉은 우리들이 우찌 알겄노!”

결국 지 서방도 요행수를 바라던 미련을 버리고 저승길 같은 가마꾼 노역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만다.

하마터면 가마꾼들 사이에서 편이 갈리어 지중지란이 일어날 뻔 하였으나 그것으로 양자 간의 실랑이는 그대로 마무리 되었으며, 가마꾼들은 저 마다 제 자리를 찾아 앉으며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한다. 남아 있던 빈자리가 뒤늦게 당도한 가마꾼들로 모두 채워지고, 교대할 예비 교군들까지 속속 나타나자 시종장 격인 김 영감의 안내로 교전비를 앞세운 용화 부인과 영동 어른이 뭇 식솔들의 배웅을 받으며 대문 밖에 나타난다.

할머님, 아버님! 원지 출행에 옥체 미령하지 않게 잘 보존하시고 부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뒤에 남은 가족들을 대표하여 환송 인사를 여쭙는 중산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으로 비장감마저 내비친다. 그러나 정작 용화 부인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여장부답게 여유를 잃지 않고 그의 인사를 받는다.

그래, 알았느니라. 종택과 문중의 막중지사를 너한테 모두 맡기고 떠나니 너의 책무가 실로 막중하니라!”

그러나 젊은 중산에게 문중과 집안일을 통째로 맡기고 떠나는 영동 어른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강한 어조로 뒷일을 당부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마음으로 집안일을 돌볼 것이며, 특히 동티가 나지 않도록 아랫것들 단속에 유념토록 하여라!”

여황처럼 위용을 갖춘 용화 부인이 수행 하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마에 오르자 영동 어른과 김 영감도 제각기 말과 나귀에 올라탄다.

길잡이로 나선 김 영감과 함께 영동 어른이 선두에 나서자 용화 부인이 탄 팔인교가 그 뒤에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용화 부인의 불공 행렬은 길가에 늘어선 대소가의 친인척들과 뭇 시종들의 환송을 받으며 황포돛배가 와 닿는 돌티미 나루를 향하여 위풍도 당당하게 천천히 멀어져 갔다.

긴다리강까지 따라 나가 불공 행렬을 전송한 중산이 집으로 막 돌아 왔을 때였다. 표충사로 가져갈 짐들을 배에 싣기 위해 일꾼들을 거느리고 먼저 돌티미 나루로 나갔던 김 서방이 바쁜 걸음을 치며 돌아와 심각한 얼굴로 그에게 고하였다.

서방님, 표충사 절에 있는 젊은 중들 이바구를 혹시 들으셨습니껴?”

말고삐를 춘돌이에게 건네고 솟을대문 쪽으로 향하던 중산은 무슨 일인가 하고 발길을 멈추며 그를 돌아다본다.

표충사 절에 있는 젊은 중들의 얘기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배를 떠나보내고 달구지를 끌고 돌아오면서 갑환이가 전하는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요!”

이 사람아,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들었기에 이리도 허둥거리는가?”

아까 집을 떠나기 전에 가마꾼으로 지원 나왔던 운당 나리 댁과 초당 나리 댁의 머슴들이 주고받았던 말이라며 갑환이가 대신 전해 주는데, 요즘 표충사 절의 젊은 중들이 왜놈들을 몰아낼라꼬 조석으로 산을 오르내리면서 죽창을 들고 체력단련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답니다요!”

표충사 젊은 중들이 체력단련을 한다고 해서 이러는 겐가? 나는 또 무슨 큰 걱정거리라도 생겼나 했지. 그러고 보니 김 서방 자네도 요새 나처럼 신경이 아주 예민해진 모양이로구먼!”

잔뜩 긴장을 했던 중산은 겨우 그 얘기냐며 실소를 하고 만다.

그러나 중산의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김 서방은 오히려 그의 처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요새 서방님께서 살얼음판을 딛고 생활하고 계시는데, 무서운 말을 함부로 지껄여대는 머슴 놈들의 말을 듣고 소인 놈의 신경이 우찌 곤두서지 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가 서양 오랑캐들과 한패라는 예수쟁이 들인데....”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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