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 속에 스미는…
 
 [2021-06-25 오후 4:26:05]

커피 한 잔을 마련한다. 빛바랜 표지 속의 LP를 꺼내 바늘을 올려놓고 소파의 정 중앙에 앉는다.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을 때 하는 일이다. 이럴 땐 클래식이 좋은데, 자연의 소리와 가장 가까운 클래식의 음색이 휴식과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LP를 들을 땐 자주 바꿔주지 않아도 되는 긴 연주시간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LP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날로그의 따뜻함이 있고, 현장감이 있다고들 하는데, 막 귀여서 인지 잘 모르겠고, 내 기준 으로는 쉽게 듣는 음악이 아니어서 좋은 것 같다. 듣고 싶은 곡을 고르고, 먼지를 털어내고, 바늘을 올리고 하는 귀찮음과, 오래된 물건의 경이로움과, 찍찍거리는 잡음이 포함된 음질이 LP를 듣게 되는 이유이다.

귀차니즘이 득세하는 날에는 CD를 듣는데, 어떤 이는 CD음색의 차가움이 싫다고 하는데, 이 또한 공감할 수 없는 일이고, 소리만으로는 훨씬 깨끗하고 풍성하고 장중하다는 게 내 느낌이다.(이건 오디오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술이라도 한 잔 한날 마주하는 음악은 어떤가? 맨 정신(?)일 때 보다 훨씬 충만한 감성으로 인해 좀 더 즐겁고, 좀 더 들뜨고, 좀 더 빠져들고, 좀 더 슬프고, 좀 더 추억에 잠기고, 그러지 않은가?

이런 날에는 스마트하게 스마트 폰을 오디오에 연결하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음악을 검색하여 플레이 한다. 디지털이라 그런지 기분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저것을 생략해 버리고 꼭 필요한 소리만 들려주는 느낌은 있지만, 어쨌든 편리하니까.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불러보기도 하고, 좋아했던 곡이 데려가는 그 때, 그 시간, 그 장소와 만나 보기도 하고, 가늘고 굵은 소리, 때론 부드럽고, 때론 거칠기도 한, 한 올 한 올 다른 소리를 음미하기도 하는, 취함이 주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엘리베이터나, 버스 안, 카페 등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소음이다.’라는 글귀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오며 가며 듣게 되는 자투리 음악도 그다지 싫지 않으니, 화분에 물을 주거나, 청소를 하거나 할 때도 음악을 듣게 된다. 이럴 때는 내려 받아놓은 곡들을 랜덤으로 플레이 시켜 놓는데, 가요, , 메탈, 재즈, 클래식에다 가끔은 판소리까지 무작위로 듣는다. 대체로 남자들은 멀티테스킹이 되지 않으니, 들리는 것 반, 흘려버리는 것 반이 되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일하기 싫음을 상쇄시켜주는 즐거움을 보태는 효과는 확실한 것 같다.

가만히 추억해 본다. 외풍이 세어서 코끝이 시린 방의 이불 속에서 듣던 팝송이나 가요의 가락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취직을 하자마자 겁도 없이 월부로 구입해 버린 오디오에 LP를 올려놓고 듣던 대학가요제의 노래나, 슬금슬금 빠져든 헤비메탈의 강렬함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연극 공연을 보다 듣게 된 스윙재즈에 뒷통수를 맞고, 한 동안 헤매고 다녔던 재즈의 분방함은?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드디어 극복하게 된, 클래식의 지루함이 즐거움이 되는 기적까지.

추억이 스민 소리는 날 것의 소리에다 아련함과 애틋함을 더하여, 스밈이 주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어떤 울림이 되려나?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갈 테고, 추억은 더 깊숙이 스며들 테니

 

김종열/前 농협 밀양시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