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유감(庶民 有感)
 
 [2021-04-09 오후 3:41:44]

밤새 달려온 기차는 몹시 지쳐보였다. 바퀴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눈이 얼어붙어 있었고, 토해낸 긴 숨이 플랫폼에 가득했다.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를 견디고 있는 우리처럼 숨이 가쁜가 보다.

 

나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 하는 시간이 참 좋다. 크고 빛나는 라이트를 켜고 훤칠한 생김새의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모습. 그 위용과 늠름함은 백마를 탄 왕자님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기차를 기다릴 때마다 늘 그리는 오빠를 태워 올 것만 같은 기대감에 가슴은 언제나 콩닥거린다. 버스, 기차, 지하철을 번갈아 이동하는 하루의 동선이 내게 선사하는 풍경들을 어찌 셈하여 갚을 수 있을 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은혜롭고 아름다워 숨이 멎을 듯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 겸손을 깨우치게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햇살이 따스한 날은 언제나 반갑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성큼성큼 걸어 나갈 수 있으니 또한 시원해서 좋다. 빗방울을 따라 추억을 불러들일 수 있어서, 비가 오면 더 좋아 우산을 쓰고 떨쳐나가고 싶다. 온갖 이파리들의 열렬한 응원은 또 어떠한가. 날렵한 까치의 속삭임. 철길 가에 기름 섞인 침목과 녹슬은 철로마저도 마냥 정겹다. 모두 외할머니와의 이야기, 그리고 내 유년의 따스한 기억들이 스며있기 때문이리라.

 

나의 이런 팔도(八道) 계급장보다도 진귀한 기개와는 별도로, 일상이 불안한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은 바람마저 차갑게 느껴지고 기차 승무원의 안내 방송조차 어쩐지 권위적이다. 코로나가 서비스정신까지 삼켜버렸나 보다. 지난 2020년은 코로나 펜데믹 때문에 정말이지 숨죽이며 살아왔다. 자유는 무참히 박탈되었고, 거리두기 방역 수칙 때문이라며 식사도 멀찍이 떨어져서 해야 했다. 그렇잖아도 냉랭하던 인심에 덩달아 흉흉한 느낌이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신경성 위염이 재발을 했는지, 한 며칠 앓던 어머니는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시원한 냉면 국물을 한 사발 마시면, 나도 정신을 좀 차릴 것도 같아서 따라나섰다. 한겨울에도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던 아버지처럼, 엄동설한에 얼음을 둥둥 띄운 냉면 맛을 아는 엄마는 참 멋장이다. 우리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하고 여행 삼아 덕천동에 있는 함흥냉면 집으로 가기로 했다. 교통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젊은 운전기사가 빨리 자리에 앉으라고 호통을 쳤다. 머리가 허연 노모가 안쓰러워 안절부절이건만. 무슨 권한으로 승객을 그리도 꾸짖는 것인지. 자식이 버젓이 보고 있는 앞에서 윽박지르듯이 어르신께 나무라다니.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분한 마음을 인내하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버스와 기차,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대중교통의 편리성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의 거친 운전 습관이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들이 홀대받는다는 생각이 들고 스스로가 한심스럽고 초라한 마음까지 들었다. 승객을 소중히 모셔주기는커녕 짐짝 취급이라니. 퇴보하고 있는 서비스 정신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지 난감하기만 하다. 힘없는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사정없이 흔들리도록 내버려두는 꼴은 아닌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정희숙/(사)기회의 학숙 총무이사,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