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잡아도 개잡은 데로
 
 [2021-05-26 오후 3:33:42]

경상도 말씨와 서울 말씨가 자주 대비된다. 열차 안에 두 무리의 여고 동창들이 수다꽃을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목청 높기로 소문난 경상도팀의 질펀한 사투리 잔치를 서울 여성들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남아권에서 온 여행객이겠거니 했더란다. 그래도 어찌나 시끄럽던지 서울팀 대표가 좀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하러 갔더니, 속사포처럼 날아든 말. “문디 가스나 지랄안하나 이캉이 말카 니캉이가?”, “어머, 어머 맞네 맞아 외국사람했더라는 우스개 소리. 부드럽고 나긋나긋하여 사랑스런 말이 경상도에도 많이 있지만, 지역민들에게만 통용되는 의미전달이 안타깝기만 하다. “으은지예, 갠찮습니더. 우리 집에도 천지빼까리 있다 아입니꺼.” 우리집에도 많으니 사양한다는 참 귀엽고 수줍은 경상도식 표현이다.

 

밀양에서 관광버스로 서울 결혼식에 가던 집안 어르신의 말 한마디, “소잡아도 개잡은 데로 가자”(‘비좁고 복잡하더라도 가까운 곳으로 가자는 경상도 사투리) 결혼식 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이 빠듯했던지 모두들 차안에서 발만 동동하던 터에, 어르신의 말 한 마디로 웃음이 폭탄처럼 빵 터졌다고 한다. 짐작이 가는 풍경이다. 이렇듯 사투리는 우리네 서민의 내면에 뿌리박힌 정서적 요소들을 진솔하게 끄집어 내어놓는 감각적이고도 고차원의 언어유희일지도 모른다. 흐드러진 사투리 한 마디가 일시에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기도 하는 이런 예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문득 언어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사투리가 갖는 지역 사회적 기능은 방언이 갖는 특유의 언어적 묘미이기도 하지만, 자주 뜻밖의 웃음을 던져주기도 하기 때문에. 단지 토속적인 언어로 흔하게 쓰인 말일 뿐인데 코미디가 될 때도 있다. 한때는 표준어에 비해 열등하게 받아들인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지키고 다시 찾아야 할 향토색 짙은 언어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다.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대회도 있다니 흥미롭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예를 왕왕 접할 때, 지역의 특성을 가진 방언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흔히 사용하고 있는 언어습관의 영향력과 파급효과까지 염려하고 배려하는 노력도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토속적이고 신랄하며 적나라한 표현들은 때때로 거침없이 원색적일 때도 있고 그래서 더욱 실감나게 공감되기도 한다.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주위의 분위기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언어가 가진 매력을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사람마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많이 다른 것 같다. 마치 자신만이 가꾸는 언어의 정원이 있는 것처럼.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없는 삭막한 시멘트 바닥 같이 건조한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절마다 색색의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드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듯이 단어를 고루 갖추어 쓰는 사람도 있다. 이는 지역마다 향토색 짙은 언어를 가꾸고 다루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산과 강으로 나뉘어져 교류가 어려웠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 방식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고, 지역 특수성이 함의된 토착 방언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차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각 나라마다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진귀하지만, 같은 나라에서 지역마다 다른 어휘를 구사한다는 것도 얼마나 재미난 현상인지. 더 낫고 못한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내가 가진 언어 유산들을 본의 아니게 아들들에게 틈틈이 증여하고 있었던 셈이다. 부디 새처럼 아름답게 타인에게 날아드는 언어를 구사하고 언어유산을 전파하는 사람이고 싶다.

 

정희숙/시인.평론가. (사)기회의학숙 총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