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인물 박의(朴義)
 
 [2011-06-21 오후 3:24:00]

박의는 고려 25대 충열왕(1274∼1308)때 사람으로 왕의 총애를 받은 장군이다.

그는 매와 개로 사냥을 잘하였고 사냥솜씨가 뛰어나서 사냥을 즐겨하던 충열왕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하루는 원(元)나라에서 온 사신과 함께 매 사냥을 나갔다가 새매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새매 꼬리 깃이 보통 새매 12개인 것에 비해 14였다. 이 새매를 본 원나라 사신은 말하기를<이새를 황제에게 바치면 필시 후한 상을 받을 것이다>하였다.

그러자 박의는 기뻐하며 자기를 데리고 원나라에 가 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 사신은 쾌히 승낙하고 귀국 시 데리고 갔었다. 이로 인해 박의는 생각지도 못한 출세 길을 달렸던 것으로 그의 매사냥 솜씨는 원나라 황제도 격찬을 할 만큼 뛰어났었다.

매사냥이란 매를 가지고 나는 다른 새를 잡는 사냥을 말하는 것으로 이 매사냥이 몽고인에게는 생활화 하다시피 했던 당시였고 하여 황제도 즐겨 매사냥을 나가고 한 원나라였던 것이다.

고려의 충열왕은 매사냥을 즐겨하였다. 세자때 원나라에 가서 숙위(인질노릇과 같은 생활로 명목상 황궁에서 경호직에 있는 것)를 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웠던 것이다.

박의가 고향 밀양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밀양사람 조천(趙阡)이 고을 원을 죽이고 삼별초(三別招)의 무리들에게 가담한 사건이 있은 후 밀양이 군(郡)의 행정단위에서 격하되어 계림(경주)군에 귀속되는 귀화부곡(歸化部曲 : 천민지역의 한 명칭)의 고을로 되었을 때 조정 신하들에게 뇌물을 먹여 가면서 다시 옛 군의 고을로 복귀시키려 한 일이었다.

그는 그런 노력을 할 때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밀성(당시 지명)은 큰 고을이며 나라에 바치는 곡물도 많다. 그런데 부곡으로 떨어뜨려 놓고 진무(鎭撫)하는 관원도 없으니 고을 사람들은 흩어질 우려가 큽니다」하고 예처럼 군수나 현감이 있어 가지고 고을을 다스리게 해 달라고 부탁을 특히 왕의 측근 신하들에게 당부하고 했던 것이다.

26대 충선왕이 세자로 있을 때 박의에게 한 말이 있었다. 「밀양 매와 개를 데리고 부왕(父王)을 사냥터로 끌고 다닌 늙은 개가 바로 박의다」하였다. 이 말에 박의는 무안해 하기도 한 것이다.

박의는 공주의 뜻을 거슬렸다하여 섬으로 한때 귀양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왕명으로 곧 풀려나고 계속 벼슬이 놓아져 재상급 벼슬인 좌복야 관직에도 오르고 충선왕 재위 시에는 밀양군(密陽君)이란 군호의 작위까지 받았다.

박의는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모은 재산도 많아 부자였다. 그가 부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인색하기가 그지없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