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인물, 현석규(玄碩圭)
 
 [2011-11-21 오후 3:35:00]

조선 4대 세종 때부터 9대 성종 때 사람으로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까지 벼슬자리에 오른 명신이었다.

그에게는 정경공(貞景公)이란 시호가 있고 조선 세조 6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던 것으로 감찰, 개성부도사(開城府都事), 형조(刑曹)와 예조(禮曹)의 정랑(正郞) 등 여러 중간급 벼슬자리를 거쳐 종2품 이상의 품계가 되는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다.

그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그가 관직을 갖고 있는 동안 공사(公事)를 잘 처리하여 성종 임금으로 칭찬을 많이 받았다.

정직하고 청렴하기로도 유명하였고 매사에 명석한 판단을 하는 일이 있어 주위 벼슬아치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은 위인이었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 그의 얼굴 모습이 남달리 까무잡잡하였는데 동료들이 ‘저 사람의 얼굴은 옻(漆)과 같이 보이지만(검지만) 마음은 맑아 물과 같다’하였다.

언제나 겸허하고 사양하는 일이 많았는데 심지어 승진시키려는 벼슬까지도 사양하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왕은 더 그를 믿고 총애하였거니와 명나라에 보내는 사은사(謝恩使)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를 역임하기도 하였는데 모두 재상의 반열에 오른 벼슬이었다.

의정부우참찬은 나라의 모든 정치를 총괄하는 관청의 정2품 벼슬이다. 원종공신은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들에게 주는 칭호의 하나로 다소 등급이 낮은 공신 칭호이다.

형조·예조는 오늘날 중앙관청의 부(部)와 같은 당시 6조(曹) 관청의 하나였다.

나라 일을 담당했던 관청들이었다. 형조는 오늘날 법무부, 예조는 외교담당 관청이다.